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사히 신문 (문단 편집) === 한국 관련 기사 === 일본 [[넷 우익]]들이 많은 사이트에선 아사삐(アサピー)나 아카히(アカヒ)[* '아카'가 빨간색이라는 뜻이므로 풀이하자면 '빨갱--이--히' 정도의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사원의 70% 정도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근거없는 공격도 받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우익]] 단체가 종종 본사 앞에서 '[[재일 조선인|조선인]] 물러가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또 아사히('''朝日''')가 [[조선일보]]('''朝'''鮮'''日'''報)의 줄임말 또는 조선일보 일본지국('''朝'''鮮日報'''日'''本支局)의 줄임말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넷 우익]]의 망상과 달리 아사히 신문이 일본 내에서 리버럴 성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한국 관련 무조건 [[친한]]적인 논조를 보이는건 아니다. 오히려 주요 한일 갈등 문제에서 일본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2018년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징용공 판결]]에 있어서 아사히 신문은 "한국은 대통령이 사법기관 등의 인사와 예산을 쥐는 ‘제왕적 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여론에 영합하기 쉬워 ‘[[국민정서법|국민감정법]]'이라는 말까지 있다.[* 물론 항목에도 있지만 국민정서법은 실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이번도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 게임에 징용 문제가 얽힌 것이다."라는 식의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는데[[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23082849|#]], 이는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 마치 법적 판단보단 여론에 좌우되었단 뉘앙스를 풍긴다. 해당 징용공 판결의 여파로 벌어진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에서도 양비론에 가까운 입장을 보였는데[* 물론 일본에서 신문 팔아먹는 입장에서 대놓고 한국 편들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다.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제3국 언론도 아닌데 자국 여론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 이로 인해 당시 한국의 진보 진영 일각에선 아사히 신문조차 저런 주장을 하는건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https://firenzedt.com/4877|#]] 한국 관련 [[오보]]도 종종 있는 편으로, 예를 들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4월 2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게 ‘북한의 핵무기 반출’을 제안했다는 보도를 했다가 정부 측에서 허위보도라고 한 적도 있으며,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한치 앞을 모르던 남북미 관계를 고려해 청와대 무기한 출입금지 조치를 받기도 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36913|#]] 다만 역사에 비춰보면 마냥 [[반한]]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초창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알린 신문사가 아사히 신문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아사히신문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기자가 '''한국 언론보다 먼저''' [[http://daishi100.cocolog-nifty.com/photos/uncategorized/2018/11/10/19910811_asahi_uemura.jpg|보도]]했다.[* 물론 직후 한국에서도 김복동 할머니가 인터뷰를 하며 한일 양국에서 이슈화되긴 한다. 기자는 1990년도 여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서울 지국장에게 피해 할머니들이 증언을 시작하셨다는 정보를 얻고 정대협의 윤정옥 공동대표를 찾아가 조사 내용과 함께 증언 테이프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872|#]]] 때문에 일본 우익들에겐 지금도 반일매국 신문이라고 공격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2012년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일본 극우 인사들과 오피니언들이 아사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부 잘못된 사실도 섞어[* 주로 [[요시다 세이지]] 관련 증언이 허구라는 거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최초로 퍼뜨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친자민당 언론을 중심으로 당시 아사히신문을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지속적인 압박 때문인지 아사히신문은 2014년 이미 고인이 된 위안부 납치 증언을 한 [[요시다 세이지]] 관련 자사 보도를 일부 취소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22&aid=0000075041|#]] 다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역사수정주의는 여전히 비판했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 신문이 딴죽을 걸기도 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775270&code=11141700&sid1=i|#]][* 참고로 이렇게만 보면 위안부 문제가 마치 여전한 논쟁거리인 양 보일 수도 있는데, 한일협정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배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위안부의 강제성 문제는 이미 글로벌 학계에선 종결이 난 사안이다. 당장 한국 뿐만 아니라 여러 해외 위안부들의 강제연행 사례가 보고되었고 심지어 요시다 세이지 외에도 강제연행을 자백한 진술은 많다.[[https://www.yna.co.kr/view/AKR20200813123700005|#]] 이 당시 국제적으로 아베가 욕 먹고 꼬리내린 것만 봐도.. 역사수정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014년 1월 22일, 사설에서 [[안중근]] 의사를 '''[[영웅]]이자 [[테러리스트]]'''라면서 [[팔레스타인]]의 아세르 아라파트[* 실제로 일본의 상당수 혐한들은 [[혐한/일본|한국과 유대계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일환 중 하나로 한국의 독립운동과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을 동일시]]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나 [[동티모르]]의 사사나 구스마오[*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점령|동티모르 지배]] 당시 독립 투쟁에 나선 인물로, 이후 동티모르가 독립하자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해 한일 양국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 사설의 취지는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의 간극이 깊은 만큼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지 말고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접점을 찾아나가자는 주장이었지만, 똑같은 사설인데도 일본에서는 '''영웅'''이란 단어를 썼다고 우익들에게 까이고, 한국에서는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썼다고 까였다.[* 근데 사실 [[테러]]라는 단어가 21세기 들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 등 종교극단주의자들의 무차별 민간인 테러 따위로 어감이 이전보다도 훨씬 나쁘게 변질된 측면은 있다. 정작 사전적으론 테러 항목에도 있듯 당대 독립운동가들 역시 쓰던 단어긴 했다.] [[파일:아사히 신문의 혐한.jpg|width=40%]]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국가별 모금 순위에서 한국을 뺀 도표를 만들어 보도하였다. 그리고 이 표가 [[넷우익]]들에게 활용되어 여러 일본 커뮤니티에 돌면서 한국을 '일본 도와주지 않은 국가'로 낙인 찍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일본 내에서 한국이 도와주지 않았던 근거로 많이 쓰이며, 실제로도 대부분(?)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2011년 당시 한국에서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며, 한국이 [[반일]] 감정 때문에 안 도와주었고 오히려 기뻐한 걸로[* 대놓고 기뻐한 경우는 없었고, 일본 넷우익마냥 한국의 몇몇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깔깔 대는 수준이었다. --그걸 번역해가서 또 혐한짓하고 그걸 퍼와서 또 혐일짓하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그것조차도 당시 다수 여론은 그래도 사람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좀 자제하자는 분위기였다.]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아사히 신문이 [[왜곡]]해서 보도한 건 '''아니다'''. 위 도표는 외국의 지원금 중 의연금 모금 순위로 20위까지 나와있는데 한국은 '''24위'''라서 도표에 안나온 것 뿐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캐나다]]도 나와있지 않다. 한국의 성금은 대부분 [[적십자]]를 통한 기금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의연금 순위가 낮은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일한병합의 진상'이란 기사에 일제 시절 조선인들이 일제 모병에 상당한 경쟁률로 참여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물론 언론이 팩트 전달은 해야겠지만 결국 아사히 신문도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일제강점기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냔 말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복동(1926)|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자세하게 [[http://naver.me/FA6b9ixF|지면]]에 싣거나 일제 통치 때문에 징용, 위안부 문제가 발생했다고 일본의 책임을 묻는 [[http://naver.me/xnEZQgai|기사]]를 넷우익들의 집요한 공세 속에서도 꾸준히 연재하는 등 반한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 이 신문의 성향을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정리하긴 쉽지 않아보인다. 확실한 건 일본 보수 언론보단 사리에 맞고 양심적이라는 것이다. [[파일:아사히광주1.png]] [[파일:아사히광주2.png]] 2021년, 과거 [[5.18 민주화운동]] 당시 아사히 신문 기자가 촬영했던 미공개 사진 원본 필름 247장이 발견되었다. [[https://www.asahi.com/articles/ASP5W3JH5P57PTIL00K.html?ref=tw_asahi|기사 원문]] 1980년 5월 19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아사히 신문 오사카 본사 사진부 소속이었던 아오이 가쓰오 기자가 별세한 뒤, 기자의 장녀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247장 분량의 사진 필름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중 57장은 컬러 사진이라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527160700073|연합뉴스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